유연의 노트

기술·법을 아는 변호사가 '금융'까지 배운다면 — 20여 년 만에 다시 앉은 그 책상, 서울대 301동

특허를 '자산'으로 읽는 세 번째 언어, IP 금융에 대하여

3줄 요약
  1. 1전기공학(기술)과 변리사·변호사(법)에 '금융'을 더하면, 특허를 '자산'으로 읽는 IP 금융이라는 새 땅이 열립니다.
  2. 2특허의 값을 매기고·담보로 잡고·유동화하는 이 일은, 기술·법·금융이라는 세 언어를 한 사람이 알아들을 때 제대로 보입니다.
  3. 3요즘 저는 서울대 04학번 동기이자 RenaAi 대표인 최병근과, 20여 년 전 함께 공부하던 그때처럼 이 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예전에 '물리에서 법으로' 건너온 이야기를 하며, 전공은 벽이 아니라 다리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저는 다리를 하나 더 건너는 중입니다. 이번엔 '금융'이라는 다리입니다.

이과에서 법으로 왔더니, 이번엔 숫자가 저를 부르더군요. 그리고 이 다리를 혼자 건너는 건 아닙니다. 20여 년 전 서울대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기와 나란히 건너고 있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조금은 사적으로 해보려 합니다.

※ 본 글은 개인적 소회와 일반적 정보를 담은 에세이이며, 특정 서비스의 권유나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세 번째 언어 — "그래서, 이 특허 얼마짜리인데요?"

기술을 아는 사람이 그 기술을 권리로 만드는 게 변리사이고, 그 권리를 끝까지 지키는 게 변호사입니다. 저는 전기공학에서 출발해 그 두 가지를 해왔습니다. 그런데 특허를 오래 다루다 보니, 자꾸 안 풀리고 남는 질문이 하나 있더군요. "그래서 이 특허, 대체 얼마짜리인가요?"

권리가 튼튼한지는 제가 압니다. 기술이 뛰어난지도 압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냐는, 법이나 기술의 언어로는 답이 안 나옵니다. 그건 '금융의 언어'거든요. 마치 병은 진단할 줄 아는데 치료비 견적은 못 내는 의사처럼, 뭔가 반쪽이 빈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 번째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특허를 '권리'나 '기술'이 아니라 '자산'으로 읽는 법 — 그게 바로 IP 금융입니다.

특허를 '자산'으로 읽는다는 것

특허를 자산으로 본다는 게 뭘까요. 어렵게 들리지만, 익숙한 것에 빗대면 쉽습니다.

· 특허는 만기 20년짜리 채권을 닮았습니다 — 존속기간이 정해져 있고, 라이선스 로열티라는 '이자'가 나오니까요.

· 동시에 콜옵션도 닮았습니다 — 시장이 커지면 크게 행사하고, 아니면 그냥 만기에 소멸하죠.

· 배당주 같은 면도 있습니다 — 하나의 특허를 여러 회사에 동시에 빌려주면(비독점 라이선스), 배당이 여러 갈래로 나옵니다.

그럼 값은 어떻게 매길까요. 남은 기간 동안 그 특허가 벌어들일 돈을 오늘의 가치로 당겨오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법과 금융이 딱 만나는, 저에겐 좀 짜릿한 지점이 있습니다. 특허가 무효가 될 위험이 크면, 그만큼 값이 깎입니다. 즉 '이 권리가 얼마나 튼튼한가'라는 법률의 질문이, 곧바로 '값이 얼마인가'라는 금융의 답으로 이어지는 거죠.

청구항 한 줄을 잘 써서 무효 위험을 낮추면, 그만큼 특허의 값이 올라갑니다. 제가 20년 가까이 해온 '권리 설계'가, 알고 보니 '밸류에이션(가치평가)'의 다른 이름이었던 겁니다. 오래 하던 일이 어느 날 새 이름표를 달고 나타난 기분이랄까요.

왜 이 세 가지를 한 사람이 쥐어야 할까

저는 기술·법·금융, 이 세 언어를 한 사람이 통역 없이 알아들을 때 IP 금융이 제대로 보인다고 느낍니다.

기술을 모르면, 그 특허가 진짜 대단한지 허풍인지 못 읽습니다.

법을 모르면, 그 권리가 분쟁에서 살아남을지 못 지킵니다.

금융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특허라도 값을 못 매겨 담보로도, 투자로도, 유동화로도 쓰지 못합니다.

특허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특허에 투자하고, 특허를 쪼개 유동화하는 IP 금융 시장이 자라고 있는데, 정작 그 문턱은 늘 '가치평가'에서 막힙니다. 시세가 없는 자산이니까요. 그 문턱을 넘으려면 세 언어가 다 필요합니다. 저는 그게, 제가 우연히 걸어온 길이 준비시켜 준 자리 같다고 느낍니다. (물론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 그래요.)

20여 년 전, 서울대 301동

이 세 번째 공부를 저는 혼자 하지 않습니다. 서울대 04학번 동기인 최병근 — 지금은 RenaAi라는 회사의 대표입니다 — 과 함께합니다. 최병근은 펀드매니저로 오래 숫자를 다뤄온 사람이고, 저는 기술과 법을 다뤄온 사람이죠. 요즘 우리는 "특허를 어떻게 자산으로 읽을까"를 놓고 자주 머리를 맞댑니다.

재미있는 건, 이게 처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20여 년 전, 우리는 서울대 301동에서 함께 공부하던 사이였거든요. 밤늦도록 불이 잘 꺼지지 않던, 공대 건물 특유의 그 강의실 말입니다. 그때 나란히 앉아 문제를 풀던 두 사람이, 스무 해를 각자 다른 길로 빙 돌아 — 한 사람은 금융으로, 한 사람은 기술과 법으로 — 다시 한 책상에 앉아 새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인생이 참 신기합니다. 그때 우리가 붙들고 있던 건 회로 방정식이었고, 지금 우리가 붙들고 있는 건 '특허의 값'입니다. 문제는 완전히 바뀌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그대로예요. 가끔은 스무 해가 그냥 하룻밤 같기도 합니다.

마치며 — 다리는, 여러 개 건널수록 새 땅에 닿는다

'물리에서 법으로' 편에서 저는 전공은 벽이 아니라 다리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위에 한 문장을 더 얹고 싶습니다. 다리는 여러 개 건널수록, 남들이 아직 못 가본 새 땅에 닿는다고요.

기술이라는 다리, 법이라는 다리를 건너온 제가 금융이라는 다리를 마저 건너면, 그 끝엔 특허가 진짜 '자산'으로 서는 땅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직 저는 그 다리 위에 있습니다. 열심히 배우는 중이고요. 다만 스무 해 전 옆자리 동기와 다시 나란히 걷고 있다는 것 — 그 하나가, 이 낯선 공부를 꽤 든든하게 만듭니다. 좋은 문제는, 좋은 짝과 풀 때 덜 무서우니까요.

"20여 년 전엔 회로 방정식을, 지금은 특허의 값을 풉니다. 문제는 바뀌었지만 옆자리 동기는 그대로입니다. 전공은 벽이 아니라 다리이고, 다리는 여러 개 건널수록 새 땅에 닿습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개인적 소회와 일반적 정보를 담은 에세이이며, 특정 서비스의 권유나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함께 보기 : 「물리에서 법으로 — 전기공학도는 왜 법정에 서는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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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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