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노트

답이 맞았는데 0점을 받은 날 — 수리영역이 저에게 가르친 것

그때는 억울했습니다. 지금은 그게 제 직업의 규칙이라는 걸 압니다. 결론이 아니라 과정을 보는 일이요

3줄 요약
  1. 1수학은 답을 맞히는 과목이 아니라 답에 이르는 길을 설명하는 과목입니다. 이 사실을 늦게 알아서 저는 한동안 헛고생을 했습니다.
  2. 2문제를 못 푸는 이유는 대개 셋 중 하나입니다. 정의를 모르거나, 조건을 안 쓰거나, 무엇을 구하는지 잊어버리거나. 재능 문제인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3. 3지금 제가 법으로 하는 일이 정확히 그 구조입니다. 조건을 확인하고 결론을 끌어내되, 그 사이의 모든 단계를 남이 검증할 수 있게 적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공부 이야기 두 번째입니다. 오늘은 수리영역, 지금 이름으로는 수학영역이죠.

고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시험지를 받았는데 답은 맞았는데 점수가 없더군요. 풀이를 적으라고 한 문제에 저는 답만 써 놨거든요. 머릿속으로 다 풀었으니 답이 맞으면 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억울해서 선생님께 갔더니 한마디 하시더군요. "네 머릿속을 내가 어떻게 보냐."

그때는 그게 야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말이 제 직업의 규칙 그 자체라는 걸 압니다. 제가 서면에 결론만 적어 내면 아무도 안 읽어 주거든요.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 수학은 답을 맞히는 과목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제가 오래 갖고 있던 오해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수학을 답을 맞히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문제를 보고, 어떤 공식을 쓸지 떠올리고, 계산해서 숫자를 뽑아내는 일. 그래서 공식을 많이 외우고 계산을 빨리 하면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수학은 어떤 조건에서 무엇이 반드시 따라 나오는지를 다루는 과목이었습니다.

이 차이가 실감 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답은 맞았는데 왜 맞았는지 설명을 못 하는 경우요. 이건 그 문제를 푼 게 아니라 그 문제를 통과한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숫자만 바뀐 문제가 나오면 또 헤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계산 실수로 답은 틀렸는데 풀이는 완전히 맞은 경우요. 실제로는 이쪽이 훨씬 나은 상태입니다. 다음번에는 맞힐 테니까요.

수학 성적이 잘 안 오르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개념은 아는데 문제가 안 풀려요." 저도 그 말을 오래 했는데, 나중에 보니 대부분 개념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정확히는 그 정의를 문장으로 말할 수 없는 상태였죠.

한번 해보시면 압니다. 함수가 무엇인지, 미분이 무엇인지, 확률이 무엇인지를 공식 없이 말로 설명해 보는 겁니다. 막히면 그게 그 단원의 구멍입니다.

두 번째 — 못 푸는 이유는 대개 셋 중 하나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그랬습니다. 문제 앞에서 막힐 때 원인은 거의 세 가지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① 정의를 모른다

앞서 말씀드린 그 경우입니다. 그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채로 문제를 풀고 있는 상태요. 이건 문제를 더 푼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② 문제에 준 조건을 안 쓴다

수학 문제에 쓸모없는 조건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풀다가 막히면 우리는 조건을 다시 보는 대신 다른 공식을 찾습니다.

저는 이걸 습관으로 만들었습니다. 막히면 조건을 하나씩 짚으면서 "이건 어디에 썼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안 쓴 조건이 있으면 거기에 길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③ 무엇을 구하는지 잊어버린다

계산을 한참 하다 보면 원래 뭘 구하려던 건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x를 구하라고 했는데 x 제곱을 구해 놓고 답으로 적는 식이죠.

이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야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를 읽으면 구하는 것을 먼저 따로 적어 두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유치해 보이지만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셋을 놓고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셋 다 재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확인하는 습관의 문제죠.

세 번째 — 틀린 풀이가 제일 아까운 자산입니다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습니다.

문제를 틀리면 우리는 보통 해설을 봅니다. 아, 이렇게 푸는 거구나 하고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빠지는 게 하나 있습니다. 내가 왜 그 길로 갔는지를 안 봅니다.

해설은 정답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지, 내가 왜 다른 길로 갔는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음번에도 나를 그 길로 데려갈 것은 내 머릿속의 그 판단이거든요.

그래서 틀린 문제를 볼 때 저는 두 가지를 적었습니다. 맞는 풀이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느 지점에서 무슨 판단을 했길래 그쪽으로 갔는지.

두 번째를 적다 보면 패턴이 보입니다. 저는 조건을 하나씩 빠뜨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계산을 급하게 하는 사람이고, 어떤 분은 문제를 끝까지 안 읽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자기 버릇이 있고, 그 버릇은 놀랄 만큼 반복됩니다.

이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아는 사람은 시험장에서 자기가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압니다.

그리고 하나 더. 틀린 문제를 다시 풀 때는 해설을 덮고 처음부터 다시 푸셔야 합니다. 해설을 읽고 이해한 것과 내가 풀 수 있는 것은 완전히 다릅니다. 이건 정말 다릅니다. 읽으면 다 아는 것 같은데 손으로 하면 안 나옵니다.

네 번째 — 그 과목이 지금 무슨 일이 되었느냐

이제 제 일 이야기입니다.

법적 판단은 이런 형태로 이뤄집니다. 법에 정해진 요건이 있고,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있고, 그 사실이 요건에 들어맞으면 정해진 효과가 따라 나옵니다. 법적 삼단논법이라고 부르는데, 구조만 보면 수학의 연역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는 두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결론만 쓰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서면에 "따라서 우리 쪽이 옳습니다"라고만 적으면 그건 주장이지 논증이 아닙니다. 어느 조문의 어느 요건이, 어떤 사실로 충족되는지를 단계별로 적어야 합니다. 고등학교 때 그 선생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남은 제 머릿속을 못 봅니다.

둘째, 조건을 빠뜨리면 결론이 무너집니다. 요건이 다섯 개인데 네 개만 검토하고 결론을 내면, 상대는 정확히 그 하나를 칩니다. 수학 문제에서 안 쓴 조건에 길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서는 안 쓴 조건에 함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면을 쓸 때 아직도 그때 하던 짓을 합니다. 요건을 하나씩 적어 놓고 각각에 어떤 사실이 대응하는지 표시하는 겁니다. 안 채워진 칸이 있으면 거기가 약한 자리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저는 요즘 금융 쪽 개념을 배우고 있습니다. 미래의 돈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다든가, 일어날 수도 있고 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에 값을 매긴다든가 하는 것들이죠. 배우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거 그때 그 단원이네.

현재가치라는 개념은 결국 나중의 값을 지금으로 끌어오는 계산이고, 확률은 그때 배운 그 확률입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이게 어디에 쓰이는지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이제 와서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좀 억울하기도 합니다.

다섯 번째 — 속도가 아니라 깊이입니다

수학 공부에서 제일 많이 오해되는 부분이 속도라고 생각합니다.

시험에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빨리 푸는 게 중요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있습니다. 빨리 푸는 것은 정확히 푸는 능력 위에 얹히는 것이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 문제를 오래 붙잡고 있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세 문제를 더 풀 수 있는데 싶었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오래 붙잡아 본 문제에서 배운 것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30분을 고민하다가 못 풀고 해설을 본 문제와, 5분 고민하다 바로 해설을 본 문제는 같은 문제가 아닙니다. 앞의 경우에는 이미 여러 갈래를 시도해 봤기 때문에, 해설을 볼 때 왜 그 길이 맞는지가 몸으로 이해됩니다. 뒤의 경우에는 그냥 새로운 정보를 하나 읽은 것에 가깝고요.

물론 무한정 붙잡고 있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대략 이런 기준으로 했습니다. 뭐라도 시도해 볼 게 남아 있으면 계속하고, 완전히 백지가 되면 그만두고 해설을 봅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풀어 봅니다.

마치며 — 그 선생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정리하겠습니다.

답만 적어 내고 억울해했던 그날의 저에게 지금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고요.

세상에는 결론만 말하면 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하는 일은 그렇습니다. 판사도 상대방 변호사도 의뢰인도, 제 결론이 아니라 제가 그 결론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를 봅니다. 그 길이 튼튼하면 결론도 서고, 그 길에 구멍이 있으면 결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무너집니다.

수학이 그 훈련이었습니다. 정의에서 출발해서, 조건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남이 따라올 수 있게 적는 것. 저는 그게 수학이 진짜로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분이나 확률은 그 훈련을 위한 재료였고요.

그러니 지금 수학 앞에서 지쳐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과목이 재고 있는 것은 머리 좋은 정도가 아니라 끝까지 확인하는 성실함입니다. 그리고 그건 여러분이 이미 갖고 있거나, 지금 기르고 있는 중입니다.

한 문제를 오래 붙잡고 계신 분들, 그 시간 안 아깝습니다. 제가 보증합니다.

"답만 적어 내고 억울해했는데, 선생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남은 제 머릿속을 못 보거든요. 지금 제가 서면에 쓰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 결론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을 적는 일이요."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이 글은 제 경험에 기초한 개인적인 이야기이며, 특정한 학습법의 효과를 보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시험의 명칭과 체제는 시기에 따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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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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