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쉬운 해설

반도체를 '오븐에 굽는다'고요? — MR-MUF를 아파트 짓기로 풀어드립니다

앞서 말한 SK하이닉스의 '법적 해자', 그 정체를 초등학생도 알게

3줄 요약
  1. 1HBM은 D램 칩을 8·12·16층으로 쌓는 '반도체 아파트'입니다 — 숙제는 '층 연결'과 '빈틈 메우고 열 빼기' 두 가지.
  2. 2경쟁사는 필름을 끼워 '다림질'하듯 누르고(NCF), SK하이닉스는 느슨히 쌓아 '오븐에 구운' 뒤 액체를 흘려 메웁니다(MR-MUF).
  3. 3이 한 끗 차이가 수율·속도·방열을 가르고, 그 배합·공정을 '특허'로 묶은 것이 바로 앞 글에서 말한 법적 해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변리사 유연입니다.

지난 글에서 SK하이닉스 주가의 비밀로 'MR-MUF라는 독자 공정 = 법적 해자'를 말씀드렸더니, 이런 반응이 많았습니다. "MR-MUF가 대체 뭔데요? 말이 너무 어렵습니다." 솔직히 저도 압니다. MR-MUF, NCF, 매스 리플로우… 이런 알파벳이 줄줄이 나오면 눈이 스르륵 감기죠. 무슨 와이파이 비밀번호 같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중학생 조카에게 설명한다는 마음으로, '아파트 건축'과 '샌드위치·오븐' 비유로 풀어드리겠습니다. 특허법인에서 반도체 특허를 오래 다루며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어려운 기술일수록 부엌 살림에 빗대면 신기하게 이해가 된다는 겁니다. 반도체 최첨단 공정도 결국 뜯어보면 '굽고, 눌러 붙이고, 빈틈 메우는' 일이라, 우리 집 주방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과 놀랍도록 닮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요리를 잘하느냐? 그건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만, 그 얘긴 넘어가죠.) 이걸 이해하시면, 왜 이 공정이 '특허 장벽'이 되는지까지 자연스럽게 보이실 겁니다.

먼저, HBM은 '반도체 아파트'입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D램 칩을 8층, 12층, 16층씩 위로 높이 쌓아 올린 반도체입니다. 말 그대로 칩으로 지은 아파트죠. 예전엔 단독주택처럼 옆으로 넓게 지었는데, 땅값(반도체에선 '면적')이 워낙 비싸지니 이젠 다들 위로 올립니다. 부동산이나 반도체나, 결국 '재개발'로 가는 건 똑같더군요.

아파트를 높이 올릴 때 가장 어려운 숙제가 두 가지이듯, 칩을 쌓을 때도 딱 두 가지가 관건입니다.

1. 위아래 층의 회로를 완벽하게 연결할 것 (전기가 통하게 = 배관·전선 잇기)

2. 칩과 칩 사이 빈 공간을 튼튼히 메우고 열을 밖으로 뺄 것 (방열·고정 = 벽 채우고 환기)

특히 2번, '열 빼기'가 생사를 가릅니다. AI 반도체는 한마디로 '열과의 전쟁'이거든요. 여름에 창문 꽉 닫고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면 얼마 못 버티죠? 칩도 똑같습니다. 높이 쌓을수록 열이 안에 갇히고, 갇힌 열은 곧 불량으로 이어집니다. 16층짜리 아파트를 지어놓고 환기구를 안 뚫으면, 입주는커녕 준공 검사부터 떨어지는 셈입니다. 이 '열 빼기' 숙제를 푸는 방식에서 경쟁사와 SK하이닉스가 갈렸습니다.

경쟁사 방식 — 필름을 끼워 '다림질'하는 NCF (샌드위치식)

경쟁사가 주로 쓰는 NCF(비전도성 필름) 방식은, 칩과 칩 사이에 딱딱한 '고체 필름 접착제'를 샌드위치 치즈처럼 한 장씩 끼워 넣습니다. 빵-치즈-빵-치즈, 이렇게요.

· 과정 — 칩 위에 필름을 깔고, 다음 칩을 얹고, 호떡 누르듯 뜨거운 열로 꾹 눌러(다림질) 붙입니다. 그리고 다음 층, 또 다음 층. 한 장 한 장 정성껏 다리미질하는, 아주 성실한 방식입니다.

· 약점 — 문제는 이 칩이 종잇장처럼 얇다는 데 있습니다. 꾹 누를 때 칩이 휘거나 뒤틀릴 수 있어요. 얇은 전병을 뒤집으려다 찢어본 적 있으시면 그 느낌 아실 겁니다. 게다가 딱딱한 필름이 미세한 틈을 완벽히 못 메워 '공기 방울(기포)'이 남으면, 그 자리에 열이 갇혀 문제가 생깁니다. 벽지 바를 때 안에 공기 들어가서 볼록 뜨는 그 기포, 딱 그겁니다. 층이 높아질수록 누르는 시간·압력이 늘어 불량률이 올라갑니다.

한마디로, 한 장씩 다림질하는 방식이라 '느리고, 휘고, 틈이 남기 쉬운' 구조입니다. 성실한데 손이 많이 가고,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실수할 틈도 많아지는 거죠.

SK하이닉스 방식 — 느슨히 쌓아 '오븐에 굽는' MR-MUF

SK하이닉스가 독자적으로 키운 MR-MUF는, 쉽게 말해 '먼저 칩을 쌓아두고, 오븐에 구운 뒤, 액체 접착제를 흘려 넣는' 방식입니다. 다림질을 포기하고 아예 오븐을 들인 셈이죠. 이름이 무시무시하게 생겼지만, 뜯어보면 원리가 그대로 보입니다. 요리 레시피랑 똑같아요.

· MR (Mass Reflow, 매스 리플로우) = '오븐에 굽기'

칩들을 먼저 탑처럼 느슨하게 층층이 쌓아 올린 뒤, 컨베이어에 태워 거대한 오븐(리플로우 장비)을 통과시킵니다. 오븐 열에 칩 사이 미세한 납땜(솔더볼)이 한 번에 스르륵 녹으며, 모든 층의 회로가 '동시에' 연결됩니다. 여러 층을 한 판에 올려 통째로 굽는, 말하자면 '층층이 라자냐'를 한 번에 익히는 방식입니다. 꾹 누르지 않으니 칩이 휠 일도 없고요. 다림질 대신 오븐을 쓰니, 굳이 힘줘서 누를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 MUF (Molded Underfill, 몰디드 언더필) = '액체로 빈틈 메우기'

회로가 연결되면, 칩과 칩 사이에 '액체 에폭시 보호재'를 주입합니다. 모세관 현상으로 액체가 틈새마다 싹 스며들어, 공기 방울 없이 빈 공간을 빈틈없이 채웁니다. 딱딱한 필름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게 아니라, 팬케이크 반죽처럼 흐르는 액체가 알아서 구석구석 흘러 들어가니 기포가 남을 자리가 없습니다. 물이 낮은 데로 알아서 흘러가듯, 액체는 틈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거든요.

다림질(NCF)과 오븐구이(MR-MUF)의 차이. 별것 아닌 조리법 차이 같지만, 이 한 끗이 전부를 바꿨습니다.

왜 이게 '대박'이 됐나 — 그리고 왜 '특허 해자'가 되나

자, 여기서부터가 기업전문변호사인 제 몫입니다. 앞이 요리 얘기였다면 지금부턴 법 얘기죠. 이 공정이 SK하이닉스에 준 우위는 세 가지이고, 흥미롭게도 그 셋이 모두 '법적 방어막'으로 이어집니다.

① 방열 — 열전도 필러를 섞은 '소재의 승리'

SK하이닉스는 이 액체 보호재에 그냥 반죽만 부은 게 아니라, '실리카' 같은 열전도 세라믹 가루를 섞었습니다. 빈틈 없이 채워지는 데다 열까지 잘 빼는 소재라, 필름 방식보다 방열 성능이 뚜렷이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보도에 따라 30% 이상~두 배가량). 반죽에 어떤 가루를 얼마나 섞느냐로 맛이 갈리는 '비법 양념'인 셈이죠. AI 반도체가 열과의 전쟁임을 생각하면 결정적 차이입니다. → 그리고 이 '소재 배합비'는 특허와 영업비밀로 꽁꽁 묶입니다. 맛집이 레시피를 절대 안 알려주는 것과 똑같은 이치예요.

② 속도·수율 — '한 번에 구워내는' 생산성

한 층씩 눌러 붙이는 NCF와 달리, MR-MUF는 오븐에 넣어 한 번에 접합·충전을 처리합니다. 그래서 공정 속도가 몇 배(보도상 3배 이상) 빠르고 불량률이 낮습니다. 한 장씩 부치는 부침개와, 한 판에 통째로 굽는 오븐 요리의 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 여기에 원가를 함께 계산해 보면 그림이 완성됩니다. 빠른 속도 + 높은 수율 = 낮은 원가 = 두꺼운 마진. 남들이 못 따라오는 원가 경쟁력이, 곧 소송조차 흡수해 버리는 현금창출력의 뿌리입니다. 곳간이 두둑하면 웬만한 싸움은 겁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③ 독자성 — '남의 권리를 밟지 않은' 공정

가장 중요한 법적 포인트입니다. 이 우위는 '남의 특허를 슬쩍 우회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안 간 길을 직접 낸' 공정입니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하냐면, 경쟁사가 흉내 내려고 해도 SK하이닉스가 미리 쳐 둔 특허 장벽을 넘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되레 침해 리스크에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앞집이 먼저 담을 쌓고 등기까지 마쳐 놓으면, 뒷집은 그 담을 함부로 넘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 지난 글에서 말한 '대체 불가능한 무형자산'과 '기술 잠금효과(Vendor Lock-in)'의 실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마치며 — 공정 한 끗의 차이가, 법의 언어로는 '해자'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NCF가 딱딱한 필름을 끼워 '다림질'하듯 누르는 방식이라면, MR-MUF는 느슨히 쌓아 '오븐에 구운' 뒤 액체를 흘려 빈틈을 메우는 방식입니다. 부엌 비유 하나로 최첨단 반도체 공정을 여기까지 끌고 왔네요. 역시 어려운 기술일수록 주방으로 데려오면 순해집니다.

엔지니어에게는 '공정 한 끗의 차이'지만, 변호사에게는 '특허로 지켜지는 해자'이고, 투자자에게는 '남이 못 따라오는 마진'입니다. 같은 오븐을 보고도 셋이 서로 다른 걸 읽는 셈이죠. 같은 사실을 세 언어로 동시에 읽는 것 — 그게 제가 기술·법·금융을 한 손에 쥐고 기업을 보는 방식입니다.

기술을 모르면 그 회사의 진짜 해자가 안 보입니다. 재무제표만 들여다봐선, 이 오븐 하나가 왜 그렇게 대단한지 절대 안 나오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말합니다. 첨단기업의 가치는 재무제표가 아니라, 그 밑에 깔린 '공정과 특허'에서 시작된다고요.

"엔지니어에겐 공정 한 끗, 변호사에겐 특허 해자, 투자자에겐 마진. 좋은 기술은 언제나 세 개의 언어로 동시에 읽힙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공개된 자료에 기초한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공정의 세부는 이해를 돕기 위해 단순화했습니다. 특정 종목의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함께 보기 : 「SK하이닉스 주가는 왜 이렇게 올랐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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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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