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

코카콜라는 왜 특허를 안 냈을까 — LG·SK 배터리 전쟁이 보여준 '영업비밀'의 세계

특허가 등기부라면, 영업비밀은 금고 속 비밀번호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사람의 머릿속으로 걸어 나갑니다

3줄 요약
  1. 1LG·SK 배터리 분쟁(2019~2021)은 한국 기업 간 최대 규모의 IP 전쟁으로, '특허'가 아니라 '영업비밀'이 주인공이었습니다.
  2. 2영업비밀은 특허와 정반대입니다 — 공개하지 않는 대신 영원히 지킬 수 있지만, 새는 순간 가치가 0이 됩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사람의 머릿속'에 담겨 걸어 다닙니다.
  3. 3그래서 이 사건의 본질은 기술 도난이 아니라 '인력 이동과 영업비밀'이라는, 모든 기술기업의 숙명적 딜레마였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퀴즈 하나. 코카콜라는 왜 그 유명한 제조법을 특허로 내지 않았을까요? 특허를 내면 20년간 확실하게 보호받을 텐데 말이죠. 답은 간단합니다. 특허를 내는 순간, 그 비법이 문서로 '공개'되기 때문입니다. 20년 뒤엔 누구나 따라 만들 수 있죠. 그래서 코카콜라는 특허 대신 '영업비밀'을 택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안 알리는 대신, 133년째 지키고 있어요.

바로 이 '영업비밀'이 주인공이었던 사건이, LG와 SK의 배터리 전쟁입니다. 오늘은 앞서 다룬 삼성·애플 특허전쟁의 짝으로,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의 세계를 변리사의 눈으로 열어보겠습니다.

※ 본 글은 이미 합의로 종결된(2021년) 사건을 소재로 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사실 단정·명예훼손이나 투자권유가 아닙니다.

PART 1. 무슨 일이 있었나 — 3분 요약

전기차 시장이 폭발하며 LG화학(배터리 사업이 훗날 LG에너지솔루션으로 분사)과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치열하게 부딪혔습니다. 2019년, LG는 "SK가 우리 핵심 연구인력을 대거 데려가는 과정에서 배터리 제조기술과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합니다. 쟁점은 이랬어요.

· 영업비밀 — 배터리 제조공정, 전극 설계·생산 노하우, 수율 개선 기술, R&D 자료

· 인력 이직 — LG는 "핵심 연구원 이직으로 비밀이 넘어갔다", SK는 "독자 개발했고 영업비밀을 쓰지 않았다"고 반박

· 특허 — 영업비밀 외에 배터리 특허를 둘러싼 맞소송까지 번짐

2021년 미국 ITC(국제무역위원회)는 SK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미국 내 일부 배터리·부품 수입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다만 완성차 공급망 충격을 고려해 일정 유예를 뒀죠). 그리고 2021년 4월, 양사는 약 2조 원(약 18억 달러) 규모로 합의하며 모든 소송을 끝냅니다 — 현금·로열티 지급, 전 세계 소송 종료, 향후 일정 기간 부제소 조건으로요.

여기까지가 사실관계입니다. 짚어둘 것 하나 — ITC는 침해를 '인정'했지만 최종 결말은 판결이 아니라 '합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SK가 훔쳤다"고 도덕적으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이 사건이 드러낸 '구조'를 보겠습니다.

PART 2. ★ 통찰 하나 — 특허와 영업비밀은 정반대다

많은 분이 특허와 영업비밀을 비슷한 걸로 뭉뚱그립니다. 하지만 실무자에겐 정반대의 물건이에요.

· 특허 = 공개하고 독점한다 — 기술을 세상에 다 공개하는 대신, 20년간 독점권을 받습니다. '등기부에 올린 내 집'이죠. 등록돼 있으니 사라지지 않지만, 20년 뒤엔 남의 것이 됩니다.

· 영업비밀 = 숨기고 영원히 지킨다 — 공개하지 않는 대신, 비밀로 유지되는 한 기한 없이 보호됩니다. '금고 속 비밀번호'예요. 코카콜라 레시피처럼 100년도 갑니다.

그런데 영업비밀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새는 순간 죽는다'는 것. 특허는 남이 봐도 등록돼 있으니 권리가 유지되지만, 영업비밀은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가치가 0이 됩니다. 한 번 깨지면 되돌릴 수 없는 유리컵 같은 거예요. 그래서 영업비밀 소송은 '내 것을 돌려달라'가 아니라 '깨진 유리의 값을 물어내라'에 가깝습니다. 배터리 수율·공정 노하우처럼 특허로 내기 애매한(공개하고 싶지 않은) 핵심 기술일수록, 영업비밀로 감춰두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PART 3. ★ 통찰 둘 — 영업비밀의 진짜 약점은 '사람'이다

여기가 이 사건의 심장입니다. 특허는 문서에 갇혀 있지만, 영업비밀은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 있습니다. 도면과 매뉴얼에만 있는 게 아니라, 그걸 만든 연구원의 경험과 감각에 배어 있죠. 그래서 사람이 걸어 나가면, 비밀도 함께 걸어 나갑니다. 핵심 연구원은 어떤 의미에서 '걸어 다니는 USB'인 셈이에요.

이 사건이 '인력 이직'을 둘러싸고 벌어진 게 우연이 아닙니다. 영업비밀 유출의 최전선은 언제나 사람의 이동이거든요. 그리고 바로 여기서 법의 가장 어려운 딜레마가 튀어나옵니다.

· 연구원에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길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죠.

· 회사에겐 '영업비밀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이 둘이 정면충돌합니다. "그 연구원 머릿속의 지식은 회사 것인가, 개인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이에요. 미국엔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가면 비밀을 안 쓸 수가 없다'며 이직 자체를 막는 법리(불가피한 공개 이론, inevitable disclosure)도 있지만, 한국에선 전직금지 약정을 아주 제한적으로만 인정합니다 — 기간·범위가 합리적이고 그 대가(보상)를 줬을 때만요. 직업의 자유를 함부로 묶을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기업의 진짜 방어선은 소송이 아니라 '평소의 관리'입니다. 누가 어떤 정보에 접근하는지 통제하고(접근 권한), 무엇이 우리 영업비밀인지 명확히 지정·기록하고, 입사·퇴사 때 서약과 절차를 남기는 것. 이게 안 돼 있으면, 정작 소송에서 "이게 우리 비밀이다"라는 것조차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영업비밀은 '지켜온 흔적'이 있어야 비밀로 보호받거든요.

PART 4. ★ 통찰 셋 — 왜 국내가 아니라 미국 ITC였을까

또 하나 흥미로운 대목. 두 한국 기업이 왜 미국 ITC에서 싸웠을까요? 이건 '전장 선택'이라는 고도의 전략입니다.

전쟁은 나에게 유리한 전장에서 하는 법입니다. 미국 ITC는 '수입 금지'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무역구제 기관이에요. 침해가 인정되면 아예 미국 시장에 물건을 못 들이게 막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죠.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두고 완성차에 납품하려는 상대에게, '미국 수입 금지'는 국내 손해배상 소송보다 훨씬 아픈 급소입니다.

그러니 이 소송의 목적도 결국 앞 편(삼성·애플)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 법정에서 이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상대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 ITC의 침해 인정 결정이 강력한 협상력을 만들었고, 그 힘이 결국 2조 원 합의로 이어졌습니다. IP 전쟁의 문법은 특허든 영업비밀이든 똑같아요. 칼은 찌르려는 게 아니라, 앉히려고 뽑습니다.

마치며 — 특허가 절반이면, 영업비밀이 나머지 절반이다

이 사건 이후 국내 대기업들은 연구인력 이직 관리, 영업비밀 보호 체계, 정보 접근 통제, 보안 교육, 퇴직자 관리 프로세스를 대폭 강화했습니다. M&A와 채용에서도 'IP 실사(IP Due Diligence)'와 영업비밀 컴플라이언스가 핵심 절차로 올라섰고요.

제가 기술기업을 볼 때 늘 두 가지를 함께 본다고 말씀드렸죠 — '무엇을 만들었나'와 '어떻게 지켰나'. 그 '지키는 법'이 다시 둘로 나뉩니다. 세상에 공개하고 독점하는 특허가 절반이라면, 세상에 감추고 지키는 영업비밀이 나머지 절반입니다. 앞 편의 삼성·애플이 앞의 절반을 보여줬다면, LG·SK는 뒤의 절반을 보여준 사건이에요.

그리고 그 뒤의 절반은, 결국 '사람'의 문제로 수렴합니다. 기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과 함께 움직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 기업의 가장 값진 자산은 금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고. 그걸 어떻게 존중하며 동시에 지킬 것인가. 그게 영업비밀 법의, 그리고 제 일의 가장 어려운 숙제입니다.

"특허가 '등기부에 올린 집'이라면, 영업비밀은 '금고 속 비밀번호'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번호는 사람의 머릿속에 담겨 걸어 다닙니다. 그래서 영업비밀을 지키는 일은, 결국 사람을 어떻게 존중하며 동시에 지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이미 합의로 종결된 사건을 소재로 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사실 단정·명예훼손이나 투자권유가 아닙니다. ITC의 결정과 당사자들의 주장은 공개된 자료에 따른 것이며, 사건은 최종적으로 양사 합의로 종결되었습니다. 개별 법적 판단은 사실관계·관할·준거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함께 보기 : 「둥근 모서리로 10억 달러를 다툰 전쟁 — 삼성 vs 애플」 · 「특허도 자산인 시대 — 유연의 IP 금융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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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법령·판례와 그 해석은 변경될 수 있고 구체적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행 중인 사안의 결과를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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