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아이디어 자체는 원칙적으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특허는 등록해야 하고, 저작권은 표현만 보호하니까요. 그래서 제안서를 보내고 당하는 일이 오래 반복됐습니다.
- 2그런데 2018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조항이 하나 신설됐습니다. 거래 교섭이나 거래 과정에서 제공받은 아이디어를 그 제공 목적에 반해 사용하면 부정경쟁행위가 됩니다.
- 3다만 관문이 있습니다. 거래 관계 안에서 건넸어야 하고, 그 아이디어에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건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이렇게 말씀드려야 할 때요.
"억울하신 건 충분히 알겠습니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아이디어를 빼앗겼다는 상담이 오랫동안 그랬습니다. 큰 회사에 제안서를 보냈고, 미팅도 몇 번 했고, 그러다 연락이 끊겼는데, 몇 달 뒤 그 회사가 거의 같은 걸 내놓더라는 이야기. 듣고 있으면 분명히 잘못된 일인데 법으로 잡을 고리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이 상담의 답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입니다.
※ 본 글은 관련 법률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실제 결론은 계약 내용과 사실관계, 증거에 따라 달라지므로 구체적 사안은 개별 검토가 필요합니다.
PART 1. 왜 아이디어는 그렇게 보호가 어려웠을까
먼저 왜 어려웠는지부터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보이거든요.
우리가 아는 지식재산 제도들이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하나씩 비켜갑니다.
· 특허 — 등록해야 권리가 생깁니다. 출원도 하기 전의 구상은 아직 아무 권리가 아닙니다. 게다가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구체성이 부족해 출원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고요.
· 저작권 — 앞서 크래프톤 편에서 다룬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이 여기서 작동합니다. 제안서에 쓴 문장과 도표는 저작물이 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사업 구상 자체는 보호 대상이 아닙니다. 문장을 그대로 복사하지 않고 내용만 가져가면 저작권으로는 잡기 어렵습니다.
· 영업비밀 — 앞서 향수 편에서 본 세 요건 중 비밀관리성이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제안을 하려면 상대에게 보여줘야 하죠. 보여준 순간 비밀 관리가 흔들립니다. 비밀유지 약정이라도 있으면 낫지만, 그것 없이 건넨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여기서 아주 고약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팔려면 보여줘야 하는데, 보여주면 가져갈 수 있는 시장.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 제안하는 상황이 정확히 이렇습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거래가 시작되지 않고, 보여주면 방어 수단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이건 개인의 억울함이 아니라 구조적 사각지대였습니다.
PART 2. ★ 2018년, 문이 하나 열렸습니다
이 사각지대를 메우려고 2018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조항이 하나 신설됐습니다. 제2조 제1호 차목입니다.
내용을 풀어 쓰면 이렇습니다. 거래 교섭이나 거래 과정에서 제공받은 타인의 기술상·영업상 유용한 아이디어가 담긴 정보를, 그 제공 목적에 반해 자기가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해 사용하게 하는 행위. 이것을 부정경쟁행위의 한 유형으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제가 이 조항을 흥미롭게 보는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조항은 아이디어에 권리를 준 게 아닙니다. 아이디어를 받은 사람의 행위를 규율한 것입니다.차이가 큽니다. 권리를 주는 방식이었다면 등록을 하든 요건을 갖추든 무언가 절차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조항은 그런 걸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걸 어떤 관계에서 받았고, 무슨 목적으로 받았으며, 그 목적대로 썼는가.
즉 소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신의의 문제로 접근한 겁니다. 빌려준 게 아니라 보여준 것이고, 보여준 목적을 벗어나 쓰면 안 된다는 것. 아이디어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받은 사람의 손을 묶은 셈입니다.
그래서 등록도 필요 없고, 비밀로 꽁꽁 관리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관계와 목적이 기준입니다.
PART 3. ★ 그럼 언제 인정되나 — 세 개의 관문, 그리고 진짜 관문
물론 아무 때나 되는 건 아닙니다. 실무에서 따지는 관문을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첫째, 거래 관계 안에서 건넸어야 합니다
조문이 "거래 교섭 또는 거래 과정"이라고 못 박고 있습니다. 상대와 무언가를 해보려는 관계 안에서 건넨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아무 관계 없는 회사에 일방적으로 아이디어를 보낸 경우, 공개 행사에서 발표한 경우,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올려둔 경우. 이런 건 이 조항으로 가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제안 요청을 받아 제출했거나, 미팅을 거듭하며 자료를 주고받았다면 관계는 인정되기 쉽습니다.
둘째, 경제적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판단 기준이 구체적입니다. 그 아이디어를 쓰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가. 또는 그 아이디어를 얻거나 개발하려면 상당한 비용이나 노력이 드는가.
뒤집어 말하면,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떠올릴 만한 것은 어렵습니다. "배달 앱을 만들자" 같은 착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와 데이터가 있어야 힘이 생깁니다.
셋째, 제공 목적에 반해 썼어야 합니다
이건 종합 판단입니다. 거래 과정이 어떤 성격이었는지, 아이디어를 준 동기와 경위가 무엇이었는지, 그 제공으로 무엇이 이뤄졌는지를 함께 봅니다. 검토해 보라고 준 것을 검토만 하고 거절한 건 문제가 없습니다. 검토해 보라고 준 것을 자기 제품에 넣은 것이 문제죠.
그런데 실무에서 승부가 갈리는 건 사실 넷째입니다.건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법이 아무리 잘 만들어져 있어도, 내가 언제 무엇을 누구에게 줬는지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경험상 상담이 무너지는 자리는 대부분 여기입니다. 앞선 편들에서 반복해 말씀드린 그 이야기가 여기서도 그대로예요. 결백도 권리도, 결국 그때그때 남긴 기록으로만 증명됩니다.
PART 4. ★ 그래서 제안하기 전에 해두셔야 할 것들
이 글에서 가장 실질적인 부분입니다. 사후에 다투는 것보다 사전에 막는 게 백 배 쉽습니다.
① 반드시 기록으로 남기십시오
미팅에서 화면으로만 보여주고 끝내지 마십시오. 발표가 끝나면 그 자료를 메일로 보내십시오. 보낸 날짜, 받은 사람, 파일 이름이 남습니다. 상대가 자료를 두고 가라고 하지 않아도 보내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 논의한 내용 정리해 보내드립니다"라는 메일 한 통이 나중에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② 문서에 목적을 적어두십시오
제안서 표지나 첫 장에 한 줄 넣으십시오. 이 자료는 협의와 검토 목적으로만 제공되며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는 취지로요.
이 한 줄이 왜 중요하냐면, 이 조항이 따지는 것이 바로 제공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문서에 명시해 두면 나중에 그 목적을 벗어났는지 판단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아무것도 안 적혀 있으면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부터 다투게 됩니다.③ 비밀유지 합의를 먼저 요청하십시오
부담스러워하실 수 있는데, 정식으로 요청하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절차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이걸 완강히 거부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보입니다.
④ 단계를 나눠 공개하십시오
처음부터 전부 보여줄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에는 무엇을 해결하는지와 어떤 효과가 있는지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는지는 관계가 진전된 뒤에. 파는 사람이 물건을 한 번에 다 풀어놓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⑤ 특허로 갈 수 있는지 먼저 검토하십시오
구상이 충분히 구체화됐다면 출원이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앞서 향수 편에서 세운 기준을 여기에도 대보시면 됩니다. 이게 제품으로 나가면 어차피 드러날 것인가. 드러날 것이라면 감추는 전략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으니, 출원을 서두르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가장 흔한 실수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미팅에서 열정적으로 다 설명하고 자료는 남기지 않는 것. 상대는 들은 것을 기억하고, 나는 준 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가장 아까운 경우입니다.
PART 5. 이미 당했다면 무엇부터 할까
순서대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시간 순서를 복원하십시오. 언제 처음 접촉했고, 어떤 자료를 언제 줬고, 미팅은 몇 번 있었고, 연락이 끊긴 시점은 언제이며, 상대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언제 나왔는지. 메일함과 메신저를 뒤져 날짜별로 정리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다음은 유사성을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비슷하다"는 말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우리 제안서의 어느 부분과 상대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겹치는지를 항목별로 대조해야 합니다. 특히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우리만의 선택이었던 부분이 겹친다면 그게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누구나 그렇게 했을 부분은 힘이 약합니다.
그다음이 내용증명입니다. 다만 감정을 담아 쓰지 마십시오. 이 문서는 나중에 그대로 증거가 됩니다. 사실관계와 근거를 담담하게 적고, 요구사항을 분명히 하는 편이 훨씬 강합니다.
이후 절차로는 사용을 멈추라는 청구와 손해배상 청구가 있고, 이 유형의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적인 시정 절차도 마련돼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균형을 위해 반드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상대는 거의 확실히 이렇게 반박합니다. 우리는 그 전부터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있었다고요. 앞선 편들에서 다룬 그 논리입니다. 그리고 상대에게 실제로 그 이전의 개발 이력이 남아 있다면 사건은 상당히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상대의 규모가 크고 관련 조직이 이미 있었던 경우라면, 그 점을 감안하고 시작하셔야 합니다.
저장해 두세요 — 제안서를 보내기 전에
1. 말로만 하지 말고 메일로 남겨라 — 날짜와 수신자가 남는 형태로 보내는 것이 전부의 시작이다.
2. 문서에 사용 목적을 한 줄 적어라 — 이 유형의 분쟁은 제공 목적을 벗어났는지로 판단된다.
3. 비밀유지 합의를 먼저 요청하라 — 거부한다면 그것도 하나의 정보다.
4. 단계를 나눠 공개하라 — 무엇을 해결하는지와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같은 날 다 주지 않는다.
5. 출원 가능성부터 확인하라 — 제품으로 드러날 기술이라면 감추는 전략은 성립하지 않는다.
마치며 — 보여줘야 팔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하겠습니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법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디어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그것을 받은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을 그은 것이죠.
저는 이 조항의 발상이 꽤 우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선 글들에서 지식재산 제도가 대체로 무엇을 소유할 수 있는가를 다뤄왔다면, 이건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가를 다룹니다. 접근 방향이 반대예요. 그리고 아이디어처럼 소유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것에는 오히려 이 방향이 맞습니다.
다만 법이 문을 열어줘도, 그 문을 통과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들입니다. 메일 한 통 보내두기, 문서에 한 줄 적어두기, 날짜 남겨두기.
거창한 계약서가 아니라 그 사소한 습관이 나중에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제안하는 쪽에 서 계신 분들께 오늘 드리고 싶은 말은 그거 하나입니다. 보여주되, 보여줬다는 사실을 남기십시오.
"아이디어는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법은 방향을 바꿨어요. 아이디어에 울타리를 치는 대신, 그걸 받은 사람의 손을 묶었습니다. 검토해 보라고 준 것을 검토만 하는 건 자유지만, 자기 제품에 넣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그러니 보여주되, 보여줬다는 사실을 남기십시오."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관련 법률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나 결과 보장이 아닙니다. 부정경쟁행위의 성립 여부는 거래의 성격, 아이디어의 구체성과 경제적 가치, 제공 경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지고, 관련 법령은 개정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 사안은 반드시 개별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함께 보기 : 「샤넬 No.5에는 왜 특허가 없을까 — 특허냐 영업비밀이냐」 · 「크래프톤 PUBG — 아이디어와 표현」 · 「우리는 훔치지 않았다는 말로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 「창업 첫 주에 5분 만에 정한 것이, 5년 뒤 가장 비싼 문제가 됩니다」)
※ 고지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법령·판례와 그 해석은 변경될 수 있고 구체적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행 중인 사안의 결과를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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