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

스위치 하나가 세상을 바꿨습니다 — 그런데 그 스위치의 주인은 누구였을까요

반도체 이야기 1부. 트랜지스터에서 집적회로까지, 그리고 이 산업이 태어나자마자 껴안고 있던 특허 분쟁

3줄 요약
  1. 1반도체의 출발점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전기를 흐르게 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 그 스위치가 트랜지스터고, 그것을 수십억 개 이어 붙인 것이 오늘의 칩입니다.
  2. 21959년, 두 사람이 몇 달 차이로 집적회로에 도달했습니다. 잭 킬비와 로버트 노이스. 그래서 이 산업은 태어나자마자 "누가 발명자인가"라는 다툼을 껴안게 됐습니다.
  3. 3그 다툼은 판결이 아니라 1966년의 교차 실시 합의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 해법이 이후 반도체 산업의 문법이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전기공학부에 들어가서 초반에 배우는 것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의 복잡한 것들이 결국 켜짐과 꺼짐 두 가지로 환원된다는 것. 스무 살의 저는 그게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변리사가 되어 반도체 특허를 다루면서 그 낭만이 조금 달라졌어요. 그 켜짐과 꺼짐 사이에 수십 년치의 특허 분쟁이 빼곡히 끼어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리고 그 첫 번째 분쟁이 하필, 이 산업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에 있었습니다.

오늘부터 반도체 이야기를 몇 편에 나눠 해보려 합니다. 1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실리콘 조각 하나가 어떻게 컴퓨터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 조각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 본 글은 기술사와 지식재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평가나 투자권유,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인용한 역사적 사실은 공개된 자료에 따른 것이고, 세부 연도와 경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PART 1.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질문 — 흐르게 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

이름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반도체(semiconductor). 절반만 도체라는 뜻이죠.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도 아니고, 전혀 안 통하는 부도체도 아닌, 조건에 따라 둘 다 될 수 있는 물질입니다.

처음 들으면 어중간해 보이는데, 바로 그 어중간함이 전부입니다. 조건에 따라 흐르거나 막힌다는 건, 그 조건을 우리가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요. 다시 말해 스위치가 됩니다.

이 역할을 예전에는 진공관이 했습니다. 유리관 안을 진공으로 만들어 전자를 날려 보내는 장치였는데, 문제가 많았어요. 크고, 뜨겁고, 전기를 많이 먹고, 백열전구처럼 툭툭 끊어졌습니다. 초기 컴퓨터가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했던 이유가 이겁니다. 스위치 하나가 주먹만 했으니까요.

1947년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나오면서 판이 바뀝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훨씬 작고, 덜 뜨겁고, 잘 안 망가지는 스위치가 생긴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디지털의 문법이 나옵니다.

· 전류가 흐른다 → 1

· 전류가 막힌다 → 0

이 둘로 모든 것을 표현합니다. 숫자도, 글자도, 사진도, 음악도, 지금 보고 계신 이 화면도요. 처음 배울 때 가장 신기했던 게 이 대목이었습니다. 컴퓨터가 똑똑해서 대단한 게 아니라, 아주 단순한 판단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반복하기 때문에 대단하다는 것.

그러니 성능을 높이는 방법도 명확합니다. 스위치를 더 많이 넣으면 됩니다. 그리고 더 많이 넣으려면 더 작아야 하고요.

PART 2. 그런데 벽에 부딪힙니다 — 배선의 지옥

여기서 예상 못 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집적회로를 낳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많이 쓰면 좋다는 건 알겠는데, 당시에는 부품을 하나하나 따로 만들어서 사람이 일일이 연결해야 했습니다. 트랜지스터 수천 개를 쓰려면 배선이 수만 개 필요하고, 그 하나하나를 손으로 붙여야 했죠.

부품이 늘어날수록 연결점도 늘고, 연결점이 늘수록 불량이 날 확률도 곱하기로 늘어납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이 상황을 "숫자의 폭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성능을 올리려면 부품을 늘려야 하는데, 부품을 늘리면 조립이 불가능해지는 딜레마였죠.

즉 병목은 소자가 아니라 연결이었습니다.

그래서 발상이 뒤집힙니다. 부품을 따로 만들어 잇지 말고, 처음부터 한 덩어리 위에 함께 만들면 어떨까. 트랜지스터도, 저항도, 배선도 전부 같은 재료 위에 한 번에.

이게 집적회로입니다. 부품을 사와서 조립하는 방식에서, 도시를 통째로 인쇄하는 방식으로 넘어간 겁니다. 그리고 이 발상 덕분에 오늘 우리 손 안의 칩에 수십억 개의 스위치가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PART 3. ★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도달했습니다

여기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 잭 킬비 —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엔지니어였습니다. 1958년 여름, 회사가 단체 휴가로 비어 있는 동안 혼자 남아 실험했고, 게르마늄 조각 하나 위에 회로 전체를 구현해 보였습니다. 다만 소자들을 잇는 배선이 공중에 떠 있는 형태여서, 대량생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 로버트 노이스 —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공동창업자였습니다. 실리콘 표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그 위에 회로를 만드는 공정을 바탕으로, 배선까지 칩 위에 얹는 방식에 도달했습니다. 공중에 뜬 선이 없으니 찍어내듯 만들 수 있었죠.

특허 출원은 몇 달 차이였습니다. 킬비 쪽이 1959년 초, 노이스 쪽이 같은 해 7월 말이었고요.

한 사람은 먼저 만들어 보였고, 다른 한 사람은 실제로 만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럼 발명자는 누구일까요.

이건 감상적인 질문이 아니라 대단히 실질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 답에 따라 앞으로 만들어질 모든 칩의 로열티가 어디로 가는지가 정해지니까요.

1962년, TI가 페어차일드를 상대로 다툼을 제기하면서 본격적인 분쟁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법적 공방은 여러 해에 걸쳐 오갔습니다.

PART 4. ★ 그런데 이 산업은 그 다툼을 판결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어제 배터리 3부작에서 다룬 이야기가 그대로 재현됩니다.

다투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집적회로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회사 모두 그 성장에서 로열티를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권리가 누구 것인지 확정되지 않았으니까요.

법의 시계는 천천히 가는데, 사업의 시계는 미친 듯이 빨랐던 겁니다.

그래서 1966년, 두 회사는 합의합니다. 서로에게 무제한의 교차 실시권을 주기로. 그리고 킬비와 노이스를 집적회로의 공동 발명자로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이후 다른 회사들에도 라이선스가 열리면서 산업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이 결말에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왜 교차 실시였는가. 둘 다 상대의 특허 없이는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막으면 둘 다 못 만듭니다. 이럴 때 답은 승패가 아니라 교환입니다.

둘째, 역사를 계약이 정했다는 것. 우리는 흔히 "누가 발명했는가"를 사실의 문제로 생각하지만, 이 경우에는 두 회사가 합의로 정했습니다. 공동 발명자라는 오늘날의 서술은 판결문이 아니라 합의문에서 나온 셈입니다.

셋째, 그리고 조금 쓸쓸한 대목.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은 킬비에게 돌아갔습니다. 노이스는 1990년에 세상을 떠난 뒤였고, 노벨상은 사후에 수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명제입니다.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 누가 권리를 가졌는가, 누가 이름으로 남았는가. 이 셋은 전부 다른 질문입니다.

앞서 스타트업 편에서 "IP는 만든 사람이 아니라 계약으로 정해진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드렸죠. 그 명제가 이 산업의 첫 페이지에 이미 적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때의 해법이 반도체 산업의 문법으로 굳었습니다. 칩 하나에는 수천 건의 특허가 겹쳐 있고, 어떤 회사도 자기 특허만으로는 칩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바닥의 특허는 남을 막는 무기보다 협상 테이블에 낼 카드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업들이 방대한 포트폴리오를 쌓는 이유도 공격보다는 교환을 위해서고요. 삼성과 애플 편에서 "칼은 찌르려는 게 아니라 앉히려고 뽑는다"고 했는데, 반도체는 그 문법이 태어난 자리입니다.

PART 5. ★ "더 작게"의 역사는 "무엇을 지킬 것인가"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실무에서 흥미롭게 본 지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도체가 작아지는 동안, 보호 수단도 함께 옮겨 다녔습니다.

· 소자와 구조 → 특허. 칩을 뜯어 단면을 보면 회로 구조와 소자 배치가 드러납니다. 어차피 감출 수 없으니 특허로 지키는 게 맞습니다.

· 회로의 배치 자체 → 우리나라에는 「반도체집적회로의 배치설계에 관한 법률」이라는 별도의 법이 있습니다. 배치설계는 발명이라기엔 애매하고 저작물이라기에도 애매해서, 아예 독자적인 권리를 만든 겁니다. 새로운 자산이 나오면 기존 서랍에 안 들어가고 새 서랍을 만들게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 공정 조건과 수율 노하우 → 영업비밀. 어떤 온도로 몇 초를 돌렸는지, 불량을 어떻게 잡았는지는 완성된 칩을 아무리 뜯어봐도 읽히지 않습니다.

· 설계자산과 설계도구 → 라이선스 계약. 요즘은 회로를 직접 그리지 않고 검증된 설계 블록을 사와 조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향수 편에서 던진 질문이 여기서 그대로 작동합니다. "제품을 뜯어보면 드러나는가." 반도체는 이 질문에 답이 갈리는 요소가 한 칩 안에 공존하는 산업입니다. 그래서 같은 회사가 특허와 영업비밀을 층층이 쌓아 씁니다. 드러날 것은 등록해 지키고, 안 드러날 것은 감춰서 지키는 거죠.

제가 반도체 특허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판단이 사실 이거였습니다. 이걸 출원할 것인가, 묻어둘 것인가.

저장해 두세요 — 반도체 뉴스를 읽는 다섯 가지 기준

1. 스위치의 개수와 크기가 성능의 본질이다 — 결국 "더 작게, 더 많이"의 경쟁이다.

2. "누가 먼저 만들었나"와 "누가 권리를 가졌나"를 구분해서 읽어라 — 기사에서 자주 뒤섞인다.

3. 특허는 건수보다 어디에 걸쳐 있는지가 중요하다 — 남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있는가.

4. 드러나는 것과 안 드러나는 것을 나눠 보라 — 구조는 특허, 공정은 영업비밀이다.

5. 반도체 분쟁 기사는 결말을 판결이 아니라 계약에서 찾아라 — 대개 교차 실시로 끝난다.

마치며 — 작은 스위치, 그리고 그 주인에 관하여

정리하겠습니다. 반도체의 역사는 더 작은 스위치를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트랜지스터에서 집적회로로, 그리고 지금 우리 손 안의 칩까지. 흐르게 할 것인가 막을 것인가라는 단순한 질문 하나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의 다른 절반을 함께 보게 됩니다. 그 스위치의 주인을 정하는 역사요. 두 사람이 거의 같은 때에 같은 답에 도달했고, 산업은 그 다툼을 승패로 끝내지 않고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는 계약으로 풀었습니다. 그 선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반도체 산업은 꽤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기술사를 읽을 때 우리는 대개 발명의 순간에 감동합니다. 휴가철 텅 빈 연구소에 혼자 남아 실험하던 엔지니어의 장면 같은 것에요. 저도 그렇습니다. 다만 그다음 장면도 함께 봅니다. 그 발명이 어떻게 권리가 되었고, 그 권리를 어떻게 나눴기에 산업이 열렸는가.

만드는 일과 지키는 일과 나누는 일. 기술의 역사는 늘 이 셋이 같이 갑니다. 그래서 저는 반도체 이야기를 할 때 물리와 법을 따로 떼어놓지 못하겠더군요. 애초에 붙어 있는 이야기라서요.

다음 편에서는 이 작은 스위치가 어떻게 더 작아졌는지, 그 미세화의 경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반도체의 역사는 더 작은 스위치를 만드는 역사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스위치의 주인을 정하는 역사이기도 했어요. 두 사람이 거의 같은 때 같은 답에 도달했고, 산업은 그 다툼을 판결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계약으로 풀었습니다. 누가 먼저 만들었는가, 누가 권리를 가졌는가, 누가 이름으로 남았는가는 전부 다른 질문입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기술사와 지식재산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평가·사실 단정이나 투자권유,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인용한 역사적 경위와 연도는 공개된 자료에 따른 것으로 자료마다 서술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당시 분쟁은 당사자 간 합의로 정리되었습니다. 지식재산 제도는 국가별로 다르고 계속 개정됩니다.

(반도체 이야기 : ① 스위치 하나의 혁명)

(함께 보기 : 「샤넬 No.5에는 왜 특허가 없을까 — 특허냐 영업비밀이냐」 · 「둥근 모서리로 10억 달러 — 삼성 vs 애플」 · 「2조 원은 시간을 산 값이었습니다」 · 「창업 첫 주에 5분 만에 정한 것이, 5년 뒤 가장 비싼 문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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