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의 기업법 노트

"우리는 훔치지 않았다"는 말로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 경력직을 뽑는 순간 시작되는 리스크

LG·SK 편이 사건의 해설이었다면, 오늘은 그 후속입니다. 그 사건 이후 기업들이 실제로 무엇을 바꿨는가

3줄 요약
  1. 1영업비밀 관리는 대개 '우리 것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회사를 더 크게 다치게 하는 건 반대 방향입니다 — 남의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죠.
  2. 2유출은 우리가 손해를 보는 일이지만, 오염은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해자가 되면 배상만이 아니라 제품 자체를 못 파는 상황까지 갑니다.
  3. 3이런 분쟁에서 회사가 해야 하는 증명은 "쓰지 않았다"입니다. 없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 말로는 안 됩니다. 오직 평소에 남겨둔 기록으로만 됩니다.

안녕하세요.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변리사 유연입니다.

경력직 면접에서 가장 위험한 질문이 뭔지 아십니까.

"전 직장에서는 그거 어떻게 하셨어요?"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좋은 인재를 알아보려는 마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질문 하나가 몇 년 뒤 소송에서 가장 아픈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면접관은 기억도 못 하는데, 지원자가 그때 화면에 띄운 자료 한 장이 남아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앞서 LG·SK 배터리 분쟁을 다루면서 영업비밀이 결국 '사람'의 문제로 수렴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다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회사는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사건 이후 기업들이 바꾼 것들이 무엇이고, 왜 그걸 바꿨는가.

※ 본 글은 영업비밀 관리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평가·사실 단정이나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언급한 분쟁은 당사자 합의로 종결된 사건으로, 어느 쪽의 주장도 최종 판결로 확정된 바 없습니다.

PART 1. 그 사건이 남긴 진짜 질문

2019년, 국내 두 배터리 기업이 미국에서 맞붙었습니다. 한쪽은 핵심 연구인력이 대거 이동하는 과정에서 제조기술과 영업비밀이 넘어갔다고 주장했고, 다른 쪽은 사람을 채용했을 뿐 영업비밀을 쓰지 않았다고 맞섰습니다. 2021년 양사 합의로 마무리됐고요.

사건 경과는 앞 편에서 다뤘으니 오늘은 딱 한 대목만 붙들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뽑았을 뿐이다"라는 항변입니다.

이 말은 그 자체로는 완전히 정당합니다. 사람을 뽑는 건 합법이고, 좋은 인재를 데려오는 건 기업 활동의 본질이니까요. 게다가 그 사람이 이전 직장에서 쌓은 경험과 감각은 그의 몸에 붙어 있어서, 옮긴다고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어려움이 시작됩니다. 사람의 이동은 막을 수 없고 그의 능력도 지울 수 없는데, 그렇다면 무엇이 위법인가.

실무의 답은 대체로 이렇게 갈립니다. 위법한 것은 이동 자체가 아니라, 자료를 가져오는 것과 그것을 쓰는 것입니다. 머리는 옮겨도 되지만 파일은 안 된다는 뜻이죠.

문제는 이 선이 현실에서 흐릿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선이 흐릿할 때 다치는 건 개인이 아니라 회사입니다. 개인은 최악의 경우 퇴사하면 되지만, 회사는 남아서 소송을 받으니까요.

PART 2. ★ 방향이 둘입니다 — 지키는 것과, 들이지 않는 것

여기가 오늘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영업비밀 관리를 한 방향으로만 이해합니다. 우리 것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보안 시스템을 깔고, 외부 저장장치를 막고, 퇴사자에게 서약서를 받습니다. 나가는 문을 잠그는 거죠.

그런데 실무에서 회사를 더 크게, 더 자주 다치게 하는 건 반대쪽입니다. 남의 것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

경력직을 한 명 뽑았습니다. 그가 전 직장에서 쓰던 자료 파일을 개인 계정에 담아 왔고, 우리 회사에서 참고했습니다. 본인은 편하려고 한 일이고 악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순간 우리 회사는 피해자가 아니라 피고가 됩니다.

두 방향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 유출 — 우리가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억울하고 아프지만, 우리는 피해자입니다.

· 오염 — 우리가 가해자가 되는 일입니다. 배상 책임을 지고, 신용을 잃고, 최악의 경우 그 기술이 들어간 제품 자체를 팔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부엌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우리 레시피가 밖으로 새면 매출이 줄어듭니다. 아픈 일이죠. 그런데 상한 재료가 하나 들어오면, 그날 만든 음식을 전부 버려야 합니다. 어느 접시에 들어갔는지 모르니까요. 손해의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첫 번째 명제입니다. 유출은 매출의 문제이고, 오염은 존속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가 앞쪽에만 돈을 씁니다.

PART 3. ★ 악마의 증명 — "안 썼다"를 어떻게 증명합니까

두 번째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걸 이해하면 왜 그렇게까지 절차가 필요한지 납득이 됩니다.

영업비밀 분쟁의 구도를 단순화하면 이렇습니다. 주장하는 쪽은 대체로 세 가지를 보입니다. 우리에게 비밀이 있었고, 상대가 그것에 접근할 수 있었고, 상대의 결과물이 우리 것과 닮았다.

그럼 반박하는 쪽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걸 쓰지 않았다.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를 보여야 합니다.

앞서 향수 편에서 역설계와 독자 개발은 적법하다고 말씀드렸죠. 맞습니다. 영업비밀은 남이 스스로 알아낸 것까지 막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실무의 잔인한 지점이 나옵니다.

적법한 것과, 적법했음을 증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우리는 안 봤습니다"는 없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논리적으로 대단히 어렵죠. 게다가 우리 회사에 그 회사 출신 연구원이 여럿 있고, 결과물이 비슷하고, 개발이 유난히 빨랐다면? 정황만으로도 상당히 불리해집니다.

이때 회사를 구하는 건 변론의 기술이 아닙니다. 기록입니다.

언제 어떤 아이디어가 나왔고, 어떤 실험을 했고, 무엇이 실패했고, 어떤 자료를 근거로 그 방향을 골랐는지. 이런 흔적이 시간 순으로 남아 있으면 "우리가 스스로 걸어온 길"이 보입니다. 반대로 결과물만 있고 과정이 없으면, 아무리 결백해도 그걸 보여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명제입니다. 결백은 사후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때그때 남긴 기록으로만 증명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영업비밀 관리 프로그램의 성격이 달라 보입니다. 이건 유출을 막는 자물쇠가 아니라, 나중에 결백을 말할 수 있게 해두는 장부에 가깝습니다.

PART 4. ★ 그래서 무엇을 하나 — 세 시점의 관리

실무에서는 사람이 회사에 들어오고, 머물고, 나가는 세 시점으로 나눠 설계합니다.

① 입사 시점 — 가장 중요한데 가장 소홀합니다

대부분의 회사가 퇴사자 관리에는 신경을 쓰면서 입사자 관리는 비워둡니다. 방향이 반대로 돼 있는 겁니다. 여기서 할 일들.

· 전 직장 자료 반입 금지 서약을 받습니다. 형식적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회사가 금지했고 개인이 위반했다"는 구도를 만드는 근거가 됩니다.

· 그 사람이 전 직장과 맺은 비밀유지 약정이나 전직금지 약정이 있는지 확인하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있다면 그 범위 안에서 어떤 업무를 맡길지 조정해야 합니다.

· 온보딩 교육에서 명확히 말합니다. "전에 하던 방식을 기억으로 재현하는 것과, 전에 쓰던 자료를 가져와 쓰는 것은 다릅니다."

· 그리고 면접 단계에서부터 전 직장의 구체적 기술 내용을 캐묻지 않도록 면접관을 교육합니다. 서두의 그 질문 말입니다.

② 재직 중 — 지정하지 않은 비밀은 비밀이 아닙니다

향수 편에서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의 세 요건 중 실무의 승부처가 비밀관리성이라고 말씀드렸죠. 그 이야기가 여기서 실행으로 바뀝니다.

· 무엇이 우리 영업비밀인지 목록으로 지정합니다. 전부가 비밀이라고 하면 아무것도 비밀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 접근 권한을 필요한 사람에게만 줍니다. 그리고 누가 언제 열어봤는지 기록이 남게 합니다.

· 문서에 등급을 표시합니다. 표시가 없으면 받는 사람이 그게 비밀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 정기 교육을 하고 그 이수 기록을 남깁니다. 교육 자체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다"는 흔적이 중요합니다.

③ 민감한 영역이라면 — 격리 절차

특히 경쟁사에서 온 인력이 같은 분야를 맡는 경우, 한 단계 더 나갑니다. 흔히 클린룸(clean room)이라 부르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개발 과정을 외부 정보와 분리해 진행하고 그 사실을 입증 가능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해당 인력을 일정 기간 그 프로젝트에서 떼어놓기도 하고, 개발 산출물의 근거 자료를 공개 문헌과 자체 실험으로만 구성해 이력을 따로 남기기도 합니다. 번거롭습니다. 개발 속도도 느려지고요.

그런데 이 절차의 목적을 다시 보시면 납득이 됩니다. 이건 도둑질을 막는 장치가 아닙니다. 훔치지 않았음을 나중에 보여주기 위한 장치입니다. 앞의 악마의 증명 이야기가 여기로 이어지는 것이죠.

④ 퇴사 시점

· 반납 확인과 퇴직자 면담을 하고 기록을 남깁니다.

· 전직금지 약정은 한계를 알고 써야 합니다. 우리 법원은 이 약정을 제한적으로만 인정합니다. 보호할 이익이 실제로 있는지, 기간·지역·직종의 범위가 합리적인지, 그 제약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었는지를 따집니다. 계약서에 넓게 써 둔다고 그대로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 그리고 잊지 마실 것. 우리가 뽑는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퇴사자입니다. 우리가 상대 회사에 요구하고 싶은 절차를, 우리도 반대편에서 겪게 됩니다.

PART 5. 균형 — 그렇다고 사람을 묶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회사 편에서만 읽으면 위험한 결론에 이릅니다.

사람에게는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이고, 회사의 편의로 함부로 묶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실무에서 더 중요한 구분이 하나 있습니다.

· 일반적인 지식과 기능, 경험 — 그 사람이 일하며 몸에 익힌 능력입니다. 이건 그의 것입니다. 경력이란 게 원래 그렇게 쌓이는 거니까요.

· 회사의 구체적 자료와 정보 — 도면, 조건표, 실험 데이터, 고객 목록. 이건 회사의 것입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회사는 경력직을 못 뽑고, 개인은 경력을 쌓아도 쓸 데가 없어집니다. 그건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 가장 잘 작동하는 기준은 이겁니다. 머릿속에 있는 능력은 가져가도 되고, 손에 든 파일은 안 됩니다. 완벽한 선은 아닙니다. 능력과 정보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으니까요. 다만 현장에서 판단할 때 이만큼 명료한 기준도 드뭅니다.

참고로 미국에는 그 사람이 그 자리에 가면 비밀을 쓸 수밖에 없다고 보아 이직 자체를 제약하는 법리가 논의되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 법원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무겁게 보아 그런 접근에 신중한 편입니다. 외국 제도를 그대로 가져와 계약서에 옮겨 적으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실무 체크리스트 — 경력직을 뽑는 회사라면 (저장해 두세요)

1. 나가는 문만 잠그지 마라 — 들어오는 문이 더 비싸다. 유출은 매출의 문제지만 오염은 존속의 문제다.

2. 입사 절차에 반입 금지 서약과 확인 기록을 넣어라 — 퇴사자 관리보다 입사자 관리가 먼저다.

3. 면접관부터 교육하라 — "전 직장에서는 어떻게 하셨어요"라는 질문이 훗날 가장 아픈 증거가 된다.

4. 결백은 사후에 만들 수 없다 — 개발 이력과 근거 자료를 그때그때 남겨라. 민감 분야라면 격리 절차까지.

5. 능력과 자료를 구분하라 — 머릿속은 그의 것, 파일은 회사의 것. 이 선을 넘어 사람을 묶으려 하면 약정 자체가 효력을 잃는다.

마치며 — 관리 프로그램은 자물쇠가 아니라 장부입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그 배터리 분쟁 이후 국내 기업들이 반입 금지 서약, 온보딩 교육, 개발 이력 관리, 격리 절차를 강화한 것은 도덕성이 높아져서가 아닙니다. 계산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가 피고가 되고, 그때 결백을 말할 방법이 평소의 기록밖에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업비밀 관리를 보안의 문제로만 보지 않습니다. 증명의 문제로 봅니다. 자물쇠를 몇 개 다느냐가 아니라, 몇 년 뒤에 우리가 걸어온 길을 시간 순으로 보여줄 수 있느냐의 문제요.

기술은 사람이 만들고, 사람은 회사를 옮깁니다. 그건 막을 수 없고 막아서도 안 됩니다. 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이동이 오염이 되지 않도록 통로를 정비해 두는 것뿐입니다. 오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두고 와야 하는지 분명히 알려주고, 우리 안에서 만든 것은 만든 과정을 남겨두는 것.

앞 편을 이렇게 닫았습니다. 기업의 가장 값진 자산은 금고가 아니라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고요. 오늘은 그 뒤에 한 줄을 붙이겠습니다. 그 자산을 지키는 방법은 사람을 묶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왔고 우리가 무엇을 스스로 만들었는지를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훔치지 않았다'는 말로는 증명되지 않습니다. 없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니까요. 결백은 사후에 만들 수 없고 평소의 기록으로만 증명됩니다. 그래서 영업비밀 관리의 본질은 유출을 막는 자물쇠가 아니라, 훗날 결백을 말할 수 있게 해두는 장부입니다."

작성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 본 글은 영업비밀 관리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칼럼(2026년 8월 기준)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평가·사실 단정이나 투자권유, 개별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언급한 분쟁은 당사자 합의로 종결되어 어느 쪽의 주장도 최종 판결로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전직금지 약정의 효력, 일반적 지식과 영업비밀의 구분 등은 개별 사안의 사실관계·계약 내용·관할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며, 외국의 법리는 우리 제도와 다릅니다.

(함께 보기 : 「코카콜라는 왜 특허를 안 냈을까 — LG·SK 배터리 전쟁」 · 「샤넬 No.5에는 왜 특허가 없을까 — 특허냐 영업비밀이냐」 · 「페라리와 F1 — 감출 수 없을 때 지키는 법」 · 「창업 첫 주에 5분 만에 정한 것이, 5년 뒤 가장 비싼 문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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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 본 사이트의 게시물은 관련 법령과 실무를 이해하기 위한 일반적 정보·교육 목적의 자료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법령·판례와 그 해석은 변경될 수 있고 구체적 결론은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행 중인 사안의 결과를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습니다.

변호사 광고 — 게시자 : 법무법인 리브로 대표변호사 · 변리사 유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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